2022년 8월 30일 화요일

국정원은 왜 리브레오피스(LibreOffice)의 다운로드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일까?

업무용 PC에 리브레오피스를 설치하려고 다운로드 사이트를 클릭했더니 국가정보원 권고사항에 따라 이용하지 못한다는 차단 메시지가 뜬다.



아마도 IP 주소로 파악한 서버의 위치가 불온한(?) 곳에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휴대폰으로 다운로드 사이트에 접속해서 설치용 파일을 내려받은 뒤, 업무용 이메일로 보내서 무사히 설치를 마쳤다. 

PC의 전원을 내리면 모든 오피스 파일, pdf 및 zip 파일 등을 삭제하는 신비한(?)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하여 내부적으로만 공유하도록 만들어진 업무망 PC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으니, 자료 수집이 가능한 외부망 PC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삭제되지 않는 '불멸의 파일'로 남겨야만 했다.

자동 파일 삭제 시스템은 파일의 확장자를 이용하여 지울 파일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렇게 지능적이지는 않다. 리브레오피스에서 사용하는 OpenDocument(.odt) 파일이나 단순 .txt 파일 및 이미지 파일은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이렇게라도 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소트프 해킹'이라는 말을 독서 중에 접한 일이 있다.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금지된 행위로 볼 수도 있지만,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아주 약간의 위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책임은 물론 본인이 져야 할 것이다. 외부망 PC에 리브레오피스를 설치하는 것은 소프트 해킹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요청을 하면 상용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외부망 PC에 설치하도록 허용해 주니까 말이다.

리브레오피스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소박하다. 약간 불편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모든 오피스 프로그램은 반드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림을 다루려면 GIMP나 Inkscape와 같은 좋은 공개 소프트웨어를 쓰면 된다.

모든 메뉴가 글씨만으로 되어 있어서 약간은 불편하지만...


2022년 8월 29일 월요일

KRIBBuntu-focal_2207 제작 완료 및 공개

2022년 8월이 다 지나가는데 버전 2207이라니 부끄럽기만 하다. 7월에 만든 배포(distro)에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 이를 어제 수정하였고, export와 import를 거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서 공개형태로 전환하였다(xz 포맷으로 압축한 KRIBBubtu-focal_2207의 구글 드라이브 링크). 제작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의 위키 페이지에 나온다.

KRIBBuntu-focal_2205 distro 제작 및 재설치 과정 

위키 페이지 타이틀은 버전 2205(a)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버전 2207를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었다. KRIBBuntu-focal_2207에서 실행할 수 있는 미생물 유전체 분석 명령어 모음은 여기(엑셀 파일)에 있다. 파일 이름이 percent encoding 상태라서 보기에 좋지 않다. 엑셀 파일의 원래 이름은 '실습용_명령어_모음_220726_.xlsx'이다. 도쿠위키(DokuWiki)에서 한글로 표시된 URL 또는 파일명을 의도한 대로 표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런지... 위키 엔진의 문제인지 혹은 접속에 사용하는 웹브라우저의 설정 문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작 KRIBBuntu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KRIBBuntu란, Linux용 Windows 하위 시스템(Windows Subsystem for Linux, 줄여서 WSL이라 부름)에서 돌아가도록 만든 우분투 기반의 배포이다. 'focal'이란 Focal Fossa, 즉 우분투 20.04LTS를 기반으로 했음을 의미한다. KRIBBuntu를 만든 목적은 올해 세 차례 진행했던 미생물 유전체 분석 실습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컴퓨터에 부담 없이 설치하여 NGS read(short, long, short + long hybrid)의 조립과 평가, 조립물에서 추출한 16S rRNA 염기서열에 대한 분석, ANI 분석 등을 실시하는 것이 목표였고, 명령어 모음에서는 꽤 수준 높은(?) Bash shell script 작성 기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Conda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버전 2207에서는 mamba도 조금씩 사용하였다. Dependency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conda package를 빠르게 설치하는 데에는 conda보다 mamba가 월등한 것 같다. 버전 2207을 만들 때에는 sudo 명령어를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리눅스 서버를 오직 일반 사용자 권한으로만 써야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KRIBBuntu-focal_2207을 WSL에 설치하는 설명(별로 친절하지는 않음, 죄송...)을 잘 참조한다면, 본격적인 리눅스 서버에 미생물 유전체 분석용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버전 2207은 최근 구입한 ThinkPad E14 G3(AMD Ryzen 7 Mobile 5700U, 16GB memory, Windows 11)에서 테스트를 완료하였다. 버전 2205에는 포함하지 않았던 canu assembler와 prokka를 넣었다는 것도 크게 달라진 점이다. 단, canu를 돌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WSL용 메모리도 넉넉하게 확보해야 한다. 아마 기본 설정은 시스템에 설치된 물리적 메모리의 50%일 것이다.

버전 2207에 각종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상당히 많았었다. 이를 위키 문서에 상세하게 소개한다면 직접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설치해 보려는 사람들(WSL이 되었든 진짜 리눅스 데스크탑이 되었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계속 게으름을 발휘한다면 문서 업데이트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그저 xz 압축 파일을 가져다가 활용하라고 유도하게 될 것이다.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ThinkPad E14에 Windows 11을 설치하다

정확히 일주일 전에 용산 전자랜드에서 구입했던 씽크패드 E14 Gen3의 운영체제를 Windows 10에서 11로 업그레이드하였다. 업무용으로 쓰던 다른 컴퓨터에서는 설치 과정을 끈기 있게 기다리지 못해서 늘 중간에 그만 두고는 하였다.

내 능력도 이렇게 쉽게 업데이트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드디어 첫 화면을 만나다.

업그레이드 후 특별히 부작용이 생긴 것은 없는지 둘러보았다. 일반적으로 상위 버전의 운영체제는 더 좋은 하드웨어를 요구하니, 작동이 더 느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특별한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설치된 일부 앱의 호환성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WSL에서 실행하는 우분투는 아직 괜찮았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는 크게 달리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작업 표시줄이 조금 더 산뜻하게 바뀐 것을 제외한다면. 다른 운영체제에서 종종 보던 스타일인데 결국 좋은 것은 서로 조금씩 모방하면서 비슷해지기도 하고, 또는 더 나아지기도 할 것이다.

복수의 OneDrive 계정에 대한 로그인 상태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은 편리하다.



불필요한 앱이 자동적으로 깔린다거나, 은근히 Edge의 사용을 강요하는 등의 사소한 불편함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최신 운영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드웨어 사양이 열악하지만 않다면.

파견 근무지에 가져갈 컴퓨터(노트북 및 우분투가 설치된 데스크탑)는 전부 AMD Ryzen이 장착된 것이다. 이것 역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이다.

짐 꾸리기 -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내 가방은 얼마나 큰가? 무조건 많은 물건을 담을 수만 있다면 좋은 것인가? 너무 크면 들고 이동하기가 어렵다. 가방의 크기는 유한하므로, 무엇을 담고 무엇을 두고 가야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한다. 

여행이란, 일상 생활을 편리함을 목적지에서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물건을 하나 가득 싸서 가져가게 되면, 여행지에서는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하다가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면서 재발견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1년 동안의 파견 근무를 위해서 얼마나 짐을 꾸려야 하나? 지난 7월에는 가져가야 할 연구용 데이터를 저장 매체에 옮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만든 Mozilla Firebird(이메일 애플리케이션)의 프로필 백업은 너무 커서 노트북 컴퓨터로 옮긴 뒤 압축 해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거 약 10년 동안의 이메일 기록을 파견지에 가져갈 필요가 있는 것일까? 파견 근무에서 할 일은 내가 하던 연구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서 퇴근 후 이따금 일을 처리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메일 백업까지 다 가져가서 펼칠 필요가 있을까? 

거창하게도 데스크탑 서버를 공식 반출 신청하여 가져갈 계획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정말 최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따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취미와 관련한 물건을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지 또한 아직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음악을 듣기 위해 사무실 책상에서 쓰던 스피커셋과 초소형 class D 앰프를 가져갈 예정이지만, 왠지 진공관 싱글 앰프도 하나 가져가고 싶다. 홈 레코딩을 하겠다고 장만한 마이크로폰, 스탠드, 믹싱 콘솔을 어떻게 할 것인가? MIDI 키보드는?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려면 이 중에서 일부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기 전에 강의를 만들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가 어렵다.

여유보다는 효율을 따져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짐을 효율적으로 싸서 가져갔을 때 마음에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가져간 물건만큼 이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내 생활을 다 펼쳐서 재현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얻어서 다른 측면에서 내 생활을 새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

뭐든지 많을 수록 좋다, 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빅데이터 시대에 어울리는 이 이야기는 저장 매체(즉 가방)의 가격과 용량이 계속 개선됨을 떨어짐을 전제로 한다. 내 가방(물리적 가방과 마음의 가방 전부)의 크기는 유한하다. 넣지 못한 물건을 아쉬워하지 말도록 하자. 

마음의 가방에 '과거'를 채워서 여행지에 오지 말라. 새로운 곳에서 만난 새로운 것으로 여행 자체를 즐기고, 그것으로 가방을 채워 돌아가자.

퇴근길에 만난 돈화문

금일 영업 종료!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개인정보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국내법인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정의한 '개인정보'는 개인과 관련한 정보인가, 혹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인가? 후자, 즉 개인식별정보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1항("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말한다)에 딸린 문구(목)를 살펴보자. 

  • 가.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 나.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정보. 이 경우 쉽게 결합할 수 있는지 여부는 다른 정보의 입수 가능성 등 개인을 알아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 비용, 기술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 다. 가목 또는 나목을 제1호의2에 따라 가명처리함으로써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이하 "가명정보"라 한다)

나는 여기에서 가목의 설명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폭력행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작대기, 몽둥이 등을 통하여 사람을 때리는 행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러면 이것을 다음과 같이 비틀어 보자.

작대기, 몽둥이 등을 통하여 사람을 때리는 도구

좀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구조를 이용하여 '필기도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고 생각해 보자. 역시 어색하다.

연필, 펜 등을 통하여 글씨를 쓰는 도구

다시 한 번 개인정보의 정의 가목을 살펴보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굵게 표시한 낱말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과 같이 이를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고 하는 것이 어법상 맞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법 조문을 만든 원래의 뜻이 훼손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통하여'를 그대로 두려면, 맨 끝에서는 동작이나 상태를 뜻하는 말로 끝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는 '정보'를 설명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다. 

개인정보의 정의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지적하는 바다. 특별히 나는 제2조1항 가목이 비문(非文: 비문법적인 문장)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학술적 목적이든 산업적 목적이든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정보주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식별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뒤에서 설명). 그런데 비식별화가 완벽하면 정보로서 쓸모가 없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이런 글이 있다. 눈을 가리면 공정해질 것이라고 믿는가? 글쎄다... 객관적으로 공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조치를 취하면 공정해 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한 현실이다.

De-indentification leads to information loss which may limit the usefulness of the resulting health information.

비식별, 재식별, 익명화 등의 용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는 것도 개인정보 보호법이 갖는 큰 문제이다. 최근 카카오헬스케어로 자리를 옮긴 신수용 교수의 글(블로그)을 조금만 찾아 읽어 보면 이것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줄줄이 파악할 수 있다. 좀 시간이 지났지만 2018년에 BioINpro에 발표한 보건의료 데이터 비식별화: 문제점과 대안부터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이 글이 나온 것은 데이터3법이 정식으로 시행(2020년 8월) 전이므로, 개인정보 보호법 내에서는 가명처리에 관한 정의가 포함되기 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1의2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단. 비식별화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가명처리"란 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비식별화(de-identification)는 식별 가능한 정보를 제거한다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비식별화는 암호화와 다르다. 암호화는 데이터가 사고로 유출되었을 때 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고, 비식별화는 데이터를 공개해서 활용할 때 해당 정보에 포함된 데이터가 식별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다(신수용, 정보과학회지 2017년 2월호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헬스케어 데이터 익명화" 중에서). 비식별화의 구체적인 방법에는 pseudonymization(가명화: 복원 가능)과 anonymization(익명화: 복원 불가)이 있는데, 국문으로는 종종 비식별화와 익명화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따진다면 (익명화)  (비식별화)이다. 생명과학자의 행동 반경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생명윤리법에는 '가명처리'에 대한 내용은 없고, 제2조19항에 익명화에 대한 정의만 나온다.

“익명화”(匿名化)란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2020.9.) <참고 1>에는 개인정보의 가명·익명 처리 기술 종류를 나열하였으니 학문적으로 관심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훑어볼 일이다.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2021.1., 일부 개정안에 대한 의견 조회가 끝났음 - 링크)에서는 가명처리의 개념을 비로소 실어 놓았고, <붙임 1>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에 따른 다음과 같은 생명윤리법 유권해석을 내어 놓았다.

개정 개인정보 보호법의 '가명처리'는 생명윤리법의 '익명화'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함.

아하... 그렇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유전체 정보는 본인 동의 및 극히 적은 예외 사항을 제외하면 가명처리를 하지 못하게 유보하였단 말이다. 데이터3법의 개정 취지가 생명윤리법이라는 벽을 뚫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의료법의 벽을 뚫지 못한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생명윤리법이 복잡하게 얽힌 틈바구니에서 연구자 또는 사업자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 싹튼다. 유전체 정보에 민감한 생명과학자로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어 보고 싶다.

미국 NHIGRI(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의 Privacy in Genomics도 처음 공부하면서 읽기에 좋은 자료이다. 개정 커먼룰(Common Rule)의 유전체 시퀀싱 및 인체유래물에 관한 정책 변경 사항도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정작 내가 커먼룰이 무엇인지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 유럽의 개인정보 보호법에 해당하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도 그렇구나...

2022년 8월 30일, 9월 8일, 9월 19일 업데이트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제23조에서 '민감정보'를 언급하고 있다. 민감정보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그 밖에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라 하였다. 유전자검사 등의 결과로 얻어진 유전정보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정의한 민감정보(즉 개인정보의 일부)는 동법 제2조1항의 개인정보 정의 목록 3가지(가, 나, 다)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글을 쓴 다음 관련 자료를 더 찾아서 읽어 보았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 조문에 나타나는 '개인정보'의 해석을 아주 주의해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동법 2조에 나오는 개인정보의 정의가 가장 중요하다. 23조에 나오는 민감정보의 설명에서는 '이러이러한 개인정보'라 하였는데, 여기서의 개인정보는 2조의 개인정보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개인정보, 즉 개인과 관련된 정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민감정보와 더불어 '개인식별정보' 역시 동법 제24조에서 별도로 정의하고 있다. 

나의 의문을 다시 정리해 보겠다. 민감정보와 개인식별정보는 매우 중요하므로 어떤 정보가 여기에 포함되는지, 그리고 처리에는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별도의 조문(시행령 포함)에서 정의하였다. 그런데 민감정보와 개인식별정보는 동법 제2조제1호에서 가-다목으로 나열한 개인정보의 정의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가? 그런 것과 상관이 없나? 누가 좀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 주면 좋겠다.

9월 16일 코엑스에서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연합포럼 2022>에서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곽환희 변호사(법무법인 오른하늘)에게 이메일로 이 궁금증을 문의해 보았다. 제4회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2022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이 행상에서 곽 변호사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법 규제와 입법 진행 상황>을 주제로 발표를 하였었다. 유익한 행사를 책상에 앉아서 유튜브로 편안하게 볼 수도 있지만, 현장에 직접 가게 되면 발표자 등 주요 인사와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은 일이다. 이메일로 받은 답변을 허락을 얻은 뒤 여기에 공개해 본다.

곽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1. 민감정보의 경우 같은 법 제23조 제1항에서 이에 대해 열거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령 제18조 각 호에서 추가로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민감정보의 경우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건강, 범죄경력자료 등)가 있기도 하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사상, 신념, 정치적 견해 등)도 있기 때문에 같은 법 제2조 제1호 가목과 나목이 혼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개인식별정보의 경우 같은 법 시행령 제19조에서 개인식별정보에 대해서 열거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여권번호, 면허번호, 외국인등록번호가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법 제1조 제1호 가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10일 후생신보의 2022 신년특집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헬스의 새로운 시작'에도 곽 변호사의 기고문 <3. 보건·의료데이터의 활용과 법적제한>이 실렸기에 여기에 그 URL을 소개하도록 한다. 6개 글 전부를 숙독하여도 좋을 것이다.

2022년 8월 23일 화요일

이마빌딩으로 출근하기

세종대로 근처를 거닐다 보면, 미국 대사관 뒤로 갈색 타일을 두른 15층 건물이 눈에 뜨인다.  꼭대기에 붙은 이름은 '利馬'. 이마? 말을 이롭게 한다? 처음에는 말 산업 또는 한국마사회와 관련한 빌딩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아마 나와 같은 오해를 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출처: 서울경제


이마빌딩은 이마산업이 30년째 관리해 오고 있는 오피스 전용 건물로서 삼봉 정도전의 집터였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마사회와는 관련이 없다. 2017년 서울경제에 실렸던 기사(건축과 도시)를 보면, 이마빌딩은 풍수지리적으로 최고명당의 위치에 자리잡은 건물로서 많은 입주사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말 산업과는 무관하지만, 이 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실 전용 마굿간, 서울시경 기마대 등이 위치하여 말과 연관이 깊은 것은 사실이다.

서울을 떠나 대전에 정착한 지 어언 3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이마빌딩에 자리잡은 사무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숙소로 마련한 오피스텔에 입주할 날짜가 아직 되지 않아서 며칠 동안은 운니동에 있는 허름한 모텔에서 묵고 있는데, 돈화문 보며 걷기 시작하여 운현궁을 옆에 두고 걷다가 멀리 경복궁과 동십자각을 바라보며 끝나가는 출근길의 정취가 너무나 좋다. 9월 1일이 되어 오피스텔로 입주하게 되면 정반대 방향에서 현대적인 건물 사이를 누비면서 이마빌딩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근무 첫날은 전산 시스템을 익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보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지메일이나 구글 드라이브를 접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 업무망과 인터넷망이 완전히 분리된 정부 전산 시스템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안정성'과 '보안'을 최대화하기 위한 정부의 전산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사람은 하나인데 왜 이메일 주소는 세 개나 되는 것인지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혼자 쓰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칸막이로 나뉜 공용 사무실을 쓰는 것도 매우 새롭다. 이 분위기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8월 1일 전에는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모습이 직장 대부분의 일하는 모습일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공간을 마련하느라 지원국 사람들(소위 '늘공', 비하를 하는 낱말이 아니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은 무척 많은 수고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직 어리둥절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황에서 뭔가 지원이 부족함을 느끼기 쉽다. 전산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다들 애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옆자리와 등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고 또 주기도 한다. 

Pseudo-'어공'이 되었으니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진짜 공무원처럼 블로그나 유튜브 운영을 위해 사전에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업무와 관련된 설익은 정보를 부지불식간에 유출하면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볼거리가 가득한 출퇴근길의 분위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마빌딩 1층 로비에 위치한 말 조형물. 머리 모양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크고 긴 꼬리 때문에 다람쥐로 착각할 수도...

이마빌딩 지하를 흐르는 샘물.





2022년 8월 21일 일요일

ThinkPad의 매력을 찾아보자



매력은 성능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씽크패드를 처음 쓰는 나에게 다가오는 매력은 바로 '빨간 점'이다. 터치패드에 워낙 익숙해 있어서 트랙포인트를 꼭 수고스럽게 익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작동 중일 때 커버 뒷면을 살펴보았을 때 영문 i자의 점이 빨갛게 빛나는 것을 보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트랙 포인트, 무선 마우스의 휠 모두 검정 바탕의 빨간색으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애플 모바일 기기는 성능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유독 높은 고객 충성도를 보이고 있지 않던가? '내가 이 IT 기기를 씀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한 포인트이다. 고객의 마음을 이러한 측면에서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가격이 경쟁품에 비해 월등히 높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객관적인 성능이 경쟁품보다 낮아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가? 내 나이와 성별을 생각해 보면 매력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