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위한 프로젝트로 남겨 두려 했다가 쉬는 김에 끝장을 보기로 하였다. 출력 트랜스 2차 권선에서 초단 캐소드로 저항을 연결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취하였다. 캐패시터는 달지 않았다. Pinterest에서 찾은 Stephan Gloeden의 회로도에서는 33K 저항을 사용하고 있었다. 부품통에는 이에 딱 맞는 수치의 저항이 없어서 저항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하여 비슷한 값을 만들었다. 캐소드 단자까지는 실드선을 사용하여 연결하였다.
상당히 어지러운 배선이지만 소리만 잘 난다면...
소리는 더 차분해지고 부귀환 적용 전과 비교하면 당연히 출력이 작아졌다. 스피커와의 매칭 문제는 해결이 되었을까? 글쎄...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선재 피복 색깔의 선택에는 일관성이 없고, 지나치게 길다. 배선을 자주 정리하는 아마추어의 입장에서는 작업을 할 때마다 자꾸 선이 짧아지니 길게 배선하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잡음이 타고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작동 전압을 측정해 보았다. 그라운드를 기준으로 플레이트는 262~263V, 스크린 그리드는 243~246V, 5극관쪽의 캐소드에는 6.2~6.5V의 전압이 걸림을 확인하였다.
2014년 내 생애 첫 진공관 앰프로 주문 제작을 하여 그 특성도 잘 알지 못한 상태로 그저 '이게 진정 좋은 소리로구나'하는 편견 또는 착각에 빠져 살다가 조금씩 불만스런 점을 발견하게 되고, 급기야 거의 전부를 걷어내고 다시 만들면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다른 앰프의 제작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경험을 바로 이 PCL86 싱글 앰프를 통해 하게 된 것이다. 개조 전에는 소리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이상 듣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원 제작자의 설계 포인트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이는 전부 이번의 작업을 통해 상식적인 수준으로 개선하였다.
싱글 엔디드 앰프이면서 왜 출력 트랜스의 코어 사이에 갭을 넣지 않았을까?
왜 상판 자체를 그라운드로 이용했을까? 상판을 그라운드에 연결했다는 뜻이 아니다. 상판을 그라운드 "선"처럼 사용했다는 것이다.
전원 트랜스와 출력 트랜스를 다음과 같이 배치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점은 원 제작자로부터 배울만한 포인트였다. 단, 나의 경우에는 두 트랜스 모두 코어 측면을 가리는 밴드가 없었다. 따라서 밴드가 있거나 또는 트랜스가 케이스에 들어 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배치하든 전원 트랜스로부터 유도되는 잡음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코어를 이러한 방향으로 배치하면 전원 트랜스로부터 험이 유도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귀로는 들리지 않았다.
최악의 험이 출력 트랜스로 유도된다.
90도 돌려 놓으면 바로 위의 배치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잡음이 유도된다.
2022년에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현재 소유한 것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야만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보관해 놓은 여분의 부품들에게 늘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면 날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면 또 뭔가 일을 꾸미게 될 것이다. 여분의 PCB, 출력 트랜스, 진공관... 그럴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네이버의 앰프 자작 관련 카페에서 글을 읽다가(회원은 아님) 이런 글을 발견했다. 진공관 앰프는 사용하는 전력에 비하여 효율이 매우 떨어지므로 매우 환경 비친화적이다. 1인 1앰프로 제한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백열등의 생산이 금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민수 용도의 전자제품에서 진공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흠, 그렇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나오는 에너지에 의존하는 모든 취미 활동을 막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취미를 지원하는 시장은 누군가에게는 생계 수단이 되기도 한다. 클라우드에 올린 10GB의 사진도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 참 어려운 문제이다.
6LQ8 SE 앰프의 PCB를 사용하여 회로를 완전히 다시 꾸미려고 하다가 방향을 크게 선회하여 기존의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빠르게 마무리하였다. 회로도는 다음과 같다. 빨간색 점선 안의 것이 원 제작자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원부의 평활용 캐패시터까지는 공통이고 그 후는 각 채널에 대해서 따로 구성되어 있다.
F. R.의 2008년도 원본 회로도는 다음과 같은 점이 다르다.
5극관에 연결된 캐소드 저항/캐패시터는 180R/100uF 63V
스크린 그리드는 HT 250V에서 1K 저항을 통하여 전원 공급
출력 트랜스의 배치에 따라서 전원 트랜스로부터 유입되는 험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저 코어 옆면을 일직선으로 되게 하지 말고 직각으로 두어야 누설 자속에 의한 유도 험이 적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실험을 해 보니 두 트랜스를 같이 세운 상태에서는 직각으로 두어도 꽤 높은 수준의 험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원 제작자가 만들었던 상태대로 출력 트랜스를 눕혔더니 유도 험이 최소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출력 트랜스의 배치 테스트.
아마도 트랜스 옆면에서 코어를 둘러싸는 밴드가 있었다면, 혹은 자속을 차단할 수 있는 케이스를 씌운다면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트랜스 배치는 결국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코어를 전부 빼서 갭을 준 뒤 재조립한 것이 가장 중요한 개선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재조립은 썩 마음에 들게 되지는 않았다. 코어의 측면에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꽂았더니 적층 후 I 코어 전체가 E쪽보다 두꺼워지고 말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출력 트랜스의 상부 커버가 수평이 아니라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PCL86 싱글 엔디드 앰프를 거실의 스피커(B&W DM10)에 물린 경우 약간의 답답한 소리가 나는 현상은 트랜스 코어의 재조립으로 현저히 개선되지는 않았다. 침실의 스피커에 비하여 감도가 2 dB 낮은 스피커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피드백을 적용하면 출력은 줄어들겠지만 댐핑팩터가 증가하여 전 주파수 대역에 대하여 비교적 평탄한 재생 특성을 보이게 되지 않을까? 부족한 지식으로 이렇게 추론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매우 저렴한 가격에 이 앰프를 만들어 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회로를 싹 걷어낸 뒤 다시 만든 것이 지난 8월이었다(링크). 소리가 난다고 하여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특정 스피커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럽지 못한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참고 듣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다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섀시에 대해서 벌써 세 번째의 알맹이가 들어차게 되는 셈이다.
이번에는 제이앨범 한병혁 님이 제작한 6LQ8 SE 앰프용 PCB를 활용해 보기로 하였다. 회로 구성은 거의 유사하여 부품만 바꾸어서 납땜을 하면 될 정도이다. 다만 핀의 배열이 다르므로 섀시 고정용 소켓을 사용한 뒤 전선을 통하여 PCB에 연결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출력 트랜스를 분해하여 코어를 재배열한 뒤 제대로 갭을 주어서 조립한 것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링크).
인터넷에서 ECL/PCL86 싱글 엔디드 앰프의 회로도를 찾으면 꽤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번에 내가 택한 것은 바로 다음의 것이다.
며칠 전에 소개한 바 있었던 다음의 회로도에서는 드라이브관과 출력관의 플레이트를 4.7M 저항으로 연결하는 매우 간단한 부귀환(negative feedback) 방법을 사용하여 눈길을 끈다. 지금껏 내가 공부했던 회로에서는 출력 트랜스 2차와 드라이브관 캐소드를 연결하는 global negative feedback만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부귀환 방법에서는 출력 트랜스의 2차 리드 중 정확한 것을 골라야 하고, 위상 차이로 인하여 캐패시터를 저항과 병렬로 연결하기도 한다. 플레이트-플레이트를 연결하는 부귀환 방법이 정말 간단하고 효율적이라면, 수많은 싱글 앰프의 회로가 이를 채용했을 것이다.
출력관용 캐소드 저항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활용하면 되므로, 비좁은 PCB에 와트수가 큰 저항을 우겨넣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공개된 ECL/PCL86 SE 앰프에서는 캐소드 저항을 제외하면 0.5W급을 쓰라고 하지만 1/4W급이라고 해서 별 일이 있겠는가? 0.5W급 저항을 PCB에 꽂기에 구멍 간격이 너무 좁으면 세워서 납땜을 해도 된다.
만약 이렇게 다시 만들어도 소리가 신통치 않으면? 다 해체하고 잊어버리련다. 이것 말고도 탐구할 복합관은 많다. 한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던 6LQ8이 그렇고, 현대관이 생산되는 6BM8도 있다.
이번에는 대출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하였지만 깊이 생각을 하면서 독서 기록을 남길 시간이 부족하였다. 책 표지와 제목 정도를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언어의 높이뛰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 이상인 지음
지리 기술 제도: 제프리 삭스(Jeoffry D. Sachs) 지음/이종인 옮김. 원제는 <The Ages of Globalization>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 <오우아무아>: 아비로브(Avi Loeb) 지음/강세중 옮김
책을 읽을 때에는 '이런 것을 기억해 놓고 나중에 꼭 독후감에 써야지'라고 다짐했던 포인트가 꽤 많이 있었다. 인상이 깊었던 쪽을 사진으로 찍어 놓기도 하고, 심지어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저장 정보를 기록해 놓기까지 하였었다. 그런데 반납 기일이 다 될 때까지 블로그 작성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와서 책 제목이라도 기록에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여니 그 다짐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신지영 교수의 책은 전에도 한번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의 잘못된 쓰임새라든가,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요소 등을 가려내고 올바르게 쓰려는 운동을 오래 지속해 온 학자이다. 책의 앞부분에는 초임 교수 시절, 교수는 당연히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남자일 것이라는 사고의 틀 안에 갇힌 학교에서 겪었던 언어 속의 여러 불합리한 모습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랬다면 책의 부제를 '신지영 교수의...'라고 시작하도록 저자가 놔 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대화 중에 상대방을 부르는 적절한 호칭이 우리 언어에는 없다.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 이를 극도로 꺼리고, 상대를 부르는데 쓸 낱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한국어를 포함한 극소수 언어의 현실이다. 우리말에서는 호칭에서 상하관계를 분명히 드러내어 불러야 하기 때문에 영어의 'you'와 같이 평등하게 2인칭을 부르는 말이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어디에 근무하며 직함은 무엇인지를 꼬치꼬치 캐물어야 하고 그것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신지영 교수가 '대통령'이라는 낱말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연을 볼 수 있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대권'이라는 말이 나는 너무나 듣기가 싫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할 뿐인데, '대권' 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은데 눈이 침침하고 화면은 너무나 작다. 가끔은 설명을 위해 한자어도 섞어서 쓰고 싶은데 마우스가 없는 노트북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 변화를 겪는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길게 누워서 스마트폰이나 문지르며 생각은 생략한 채로 '건너뛰기 정보 입수'에만 몰두한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아비 로브의 책은 과학을 하는 자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 빌린 책 중에서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느꼈다.
나는 그러한 모든 의사결정 기관이 자원의 상당 부분, 말하자면 20% 정도를 고위험 프로젝트에 의무적으로 할애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금융 포트폴리오와 마찬가지로 인류는 과학에 분산 투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원이 처한 상황은 이러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젊은 시절의 열정을 잃고 경력 사다리를 통해 종신 고용직까지 오른 뒤에는 더하다. 연구원들은 그 직업의 안정성을 활용하는 대신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로 구성된 메아리 방을 만들어 과학적 영향력과 명성을 증폭하는 데 쓴다. 영예는 학계의 얼굴을 꾸며 주는 화장일 뿐인데도 집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나는 종신 고용직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다. 학회 같은 곳에서 만난 사람이 '김 아무개 교수님, 박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다가 내 앞에 와서는 약간의 뜸을 들이면서 '정 박사님'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이런 일과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꽤 있다. 그러나 자존심 문제도 있고 하니 상세하게 적지는 않겠다. 호칭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를 재확인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일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부를 수 있는 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여기 인용한 글귀를 공감하지 못한다거나, 그럴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권위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열린 사고이다. 과학사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사건은 모두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이만하면 썩 잘 만들었어! 하고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 최소한 침실에서 사용하는 스피커(인켈 SH-950)에 연결했을 때는 그랬었다. 자작 앰프가 쌓이면서 공간이 협소하여 거실로 갖고 나와서 B&W DM10에 연결해 보니 AM 라디오 소리가 난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참조했던 앰프의 회로도는 다음 그림과 같다. 폴란드 쪽의 커뮤티니에서 입수한 회로도인데 원본의 위치를 지금은 못 찾겠다.
원본이 있었던 URL을 찾기 어렵다. 여기에는 이것과도 매우 흡사한 회로도가 있다. 2008년 이 회로를 그린 F. R.은 누구일까?
출력 트랜스의 코어에 갭이 없어서 그런가? 6LQ8 싱글 앰프에 사용하던 초소형 출력 트랜스를 연결해 보았다.
이 트랜스는 6LQ8 싱글 앰프에 물린 상태에서는 스피커를 가리지 않고 잘 울린다. 그러나 PCL86 싱글 앰프 + DM10의 조합에서는 트랜스를 바꾸기 전과 마찬가지로 AM 라디오 소리가 난다.
다시 좌절감에 휩싸인다. 적출한 트랜스는 코어를 전부 분리하여 E와 I를 한데 모은 뒤 갭을 주어 재조립하였다. 언제든 쓰일 날이 올 테니까... 재활용 커버라서 앞뒤의 색깔이 다르다.
분리한 코어를 정리하여 갭을 준 뒤 끼우는 방법은 다음 동영상 "Winding a ultra linear single ended output transformer 6K, 10K, 12K to 4, 8 Ohm"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맨 마지막의 E 코어를 나저미와 반대 방향으로 끼우는 것이 핵심이다. 트랜스에서 코어를 빼낸 뒤 재조립하면 아무래도 이전과 똑같은 두께가 되질 않는다. 결국 I자 코어 한 장은 꽂지를 못했다. 억지로 끼워 넣으면 양 끝의 E 코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함침 작업이 되어 있지 않아서 코어를 분해하는 것은 무척 쉬웠으나 곳곳에 녹이 슨 흔적이 있었다. 최종 재조립 후 내가 한 일은 겉에다 목공용 바니쉬를 겹겹이 바르는 정도였다. 트랜스포머 제조 등에 쓰이는 절연용 바니쉬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일반인이 1-2리터 정도를 사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렇다면 회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일까? 3극+5극 복합관을 사용한 싱글 엔디드 앰프의 회로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이고, PCL86은 음질적인 면에서 결코 가벼이 볼 관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특정 스피커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가 나는 것인지! 스피커의 sensitivity는 87과 db/W 89 db/W의 차이가 있어서 DM10을 울리기 조금 더 어려운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하여 고음부가 이렇게 잘려 나갈 수가 있을까? 회로도에는 4와트(2W + 2W인가?)라고 적혀 있는데 말이다.
스피커 시스템을 탓하기에 앞서서 앰프쪽을 개선할 여지가 더욱 많다고 생각한다. 구글 검색을 통하여 ECL/PCL86 싱글 앰프의 매우 상세한 제작기를 발견하여 이를 공부 재료로 삼으려 한다.
피드백 방법이 매우 독특하고, LM317을 이용하여 캐소드에 일정한 전류를 흐르게 만든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성능이 서로 다른 중고 진공관을 좌우 채널에 사용할 때 출력을 맞추는데 매우 유용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이 숙제를 잘 해결한다면, 앞으로 6BM8 등 복합관을 이용한 싱글 앰프를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을 위한 안내용 로봇을 처음 본 것이 올해였다.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카메라와 화면 및 스피커가 달린 몸체가 바퀴로 움직이는 그런 형태의 것이었다. 얼마 전 유성호텔 커피숍에서는 음료수를 나르는 로봇을 접하기도 했었다. 작은 바퀴로 움직이다 보니 고르지 않은 바닥을 지나면서 로봇의 윗부분으로 갈 수록 진동이 더욱 증폭되어 쟁반에 담긴 커피가 흐르거나 쓰러지지는 않을지 약간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었다.
일요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유성에 있는 음식점에 가게 되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니 테이블마다 주문 및 결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흔히 보던 키오스크가 소형화되어 식당의 각 테이블에 설치되어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돈을 먼저 내게 만든다. 사실 나는 돈을 미리 내고 손님이 음식을 직접 가져다 먹고 치우는 시스템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원래 그러한 서비스 비용이 가격에 다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식당을 둘러보니 처음 보는 물건이 있다. 바로 음식을 나르는 로봇이었다. 호텔에서 보았던 로봇보다는 장애물 회피 움직임 등 모든 면에서 나은 움직임을 보였다. 음식뿐만 아니라 종업원을 불러서 가져다 달라고 흔히 요청하는 앞접시와 일회용 앞치마 등도 담겨 있었다. 음식을 나르는 로봇이 있다고 하여 종업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과 같은 것을 실은 로봇이 테이블 옆에 와서 멈추었지만, 화면에 표시된 테이블 번호가 우리가 앉은 자리의 것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음식을 내리지 못했다. 오! 벌써 이런 세상이 되었나? 이러한 로봇으로 인해서 식당은 서비스 속도와 질이 높아지고 인건비도 줄이게 되었을까?
신기함을 느끼기에 앞서서 각 테이블마다 주문 및 결제 시스템을 설치하고 서빙용 로봇을 갖추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로봇으로부터 음식을 내려놓은 뒤 동작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스크린에 터치해 주어야 했다. 중량 센서가 있어서 그릇을 내려놓았음을 로봇이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음식을 내리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약간은 불편하였다. 만약 거동이 불편하거나 어린이가 와서 음식을 내리다가 그릇을 엎기라도 한다면? 그러다가 뜨거운 음식이나 깨진 그릇에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 소재는?
바로 어제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요한슨(목소리로만 출연) 주연의 2013년도 영화 <그녀(Her)>가 생각났다. 혹시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글 아랫쪽으로 건너뛰시기를 바란다.
고도로 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음성으로 소통할 수 있는 OS에게 마음을 터 놓고, 심지어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공교롭게도 남자 주인공은 손으로 쓴 것만 같은 편지를 대신 써 주는 작가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듬뿍 담아 사람들 사이의 빈 틈을 매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정작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는 실패했고, 소개 받은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도 좀처럼 솔직한 마음을 담아 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OS를 점점 친구나 연인처럼 여기게 되고, 길거리를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실제 촬영은 현대적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인지 상하이에서 이루어졌다고 함)은 저마다 이어셋을 꽂고 무엇인가를 중얼댄다. 아래의 동영상은 '사만다'가 가의 인간 연인을 위해 직접 만든 노래 "The Moon Song"이다.
사만다는 몸을 갖춘 인간과의 교감을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한다. 인간과 OS의 기묘한 사랑에 흥미를 갖는 여성을 끌어들여서 직접 사랑의 행위를 하려는 시도는 이에 몰입하지 못한 테오도르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지만.
그러나 이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 과정은 인간 커플이 서로에게 더 이상 흥미와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관계가 깨어지는 것과 많이 닮았다. 사만다는 이미 작고한 철학자의 저작물을 전부 읽고 그를 되살려내어 즐겁게 대화하면서 이를 오히려 테오도르에게 소개한다. 인간 커플과 테오도르-사만다의 더블 데이트도 이루어진다. 어느 날 일순간 OS가 접속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패닉에 다다른 테오도르는 단말기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가 접속이 되는 곳을 찾고자 한다. 이어서 다시 돌아온 사만다의 고백이 이어진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유일한 친구이자 애인이었지만, 사만다는 더 이상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되면서 그들과도 친구 이상의 관계를 갖게 되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책에 비유한다면 그 단어 사이의 공간이 너무나 길다고 토로한다.
약간의 이야기가 더 이어지지만 영화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왜 <She>가 아니고 <Her>가 제목인지는 영어 대사를 다시 집중하여 듣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어찌하여 인간은 AI에 감정적인 면까지 의존하게 되었나? 기계는 사람이 하기 힘들거나 지루한 작업을 대신 하는 고마운 존재라고 일단은 아주 단순하게 그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다. 식당에 등장한 서빙용 로봇이 그러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일단 생각해 보자. 점주는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종업원의 고용을 줄여서 인건비를 현저하게 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종업원이 직접 테이블로 와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 주는 접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그렇게 무가치한 일일까? 서로 대화와 눈빛을 통해서 요구 조건을 전달하고, 감사 또는 불만을 전하는 그 자연스러운 일이 과연 로봇으로 대체해도 되는 일일까? 어쩌면 음식을 주문받고 나르는 모든 일은 너무나 힘들고 보람이 없는 일이기에, 결국은 로봇이 다 감당해야 하는 일인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을 무가치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로만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건전하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상 어디에나 '빌런(villain)'이 넘치고, 이를 고발하는 글이 인터넷에 넘쳐나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를 증폭한다. 주차장에서,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아파트 바로 윗집에서, 직장에서, 학부모 모임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사람이 직접 대면을 하여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이제는 대면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 큰 문제다.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 '역병'도 사람들을 잠재적인 병원체 전달자로 여기고 가까이 하지 않게 만드는 문화를 만드는 주역이 되었다. 이러한 비대면 시대의 빈 틈에서 소위 AI라는 것이 시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로봇이나 컴퓨터가 한 일이 사람이 직접 한 일과 구별하기 어려울 때 인간은 그 성과를 놀라워한다. 튜링 테스트도 인공지능의 그러한 능력을 평가하는데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적인 접촉을 더욱 원한다. 내가 카카오톡으로 상담을 한 상대방이 챗봇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유튜브에서 본 정치인의 연설이 실제는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는 내가 대접을 잘 못받고 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햄버거를 하나 먹으려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서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사람이 주문을 받아? AI 키오스크를 데려다 오라고!'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의 키오스크 수준이 아직 불완전하니, 더욱 개선되면 과연 나아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흠... 어쩌면 세상이 내 생각과 다르게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비극적인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제출해야 하는 설에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들이밀면 예의가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AI는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일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AI가 만든 정보나 인물(현실의 인물을 거의 동일하게 구현한)은 대중에게 잘못되거나 조작된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너무 좋다. 인구가 현재의 수십분의 일 수준으로 줄었을 때라면 AI가 구현한 가상 인물이 설 자리가 많아지겠지만 말이다.
다중서열정렬(multiple-sequence alignment)에서 conserved region을 뚝딱 뽑아주는 프로그램이 널려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trimAl이나 ClipKIT에서 그런 기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원래 이들 프로그램의 용도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ClipKIT의 log 파일에서는 각 컬럼의 위치에 대하여 constant site 여부를 보여주기는 하지만(옵션에서 constant site를 추출하도록 지정하는 경우에 한함), 이를 수치로 출력한 뒤 사용자가 고르게 해 주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서열에 대하여 동일한 잔기가 존재하는 경우 계통발생학적 분석에서 많은 정보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Biostars를 검색하니 이런 목적으로 Perl 코드를 이용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무려 10.5년 전의 질문과 답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답을 제공한 Neilfws라는 사용자의 프로필을 따라가 보니 그는 내가 관심을 갖고 체크해 두었던 논문 "Pathogenic archaea: do they exist?" BioEssays 25:1119의 공저자인 Neil Saunders라는 사람이었다(구글 스칼라). 시드니에 거주하며 Curtin University에 근무하는 것으로 나온다.
파이썬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Neil의 답글에 따르면, Perl에서는 Bio::SimpleAlign 오브젝트를 이용하여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방법이 전부이다.
이 해법에서는 alignment를 컬럼 단위로 slice하여 처리하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BioPerl로 늘 FASTA 파일만 다루다가 이 스크립트를 따라하면서 AlignIO 및 SimpleAlign을 처음으로 다루어 본다. 아, 부끄러워라.
3만개가 넘는 SARS-CoV-2 genome의 MSA를 처리하는 것이 목표라서 일단은 100개 서열만 취하여 테스트를 해 보았다. 현재 사용하는 리눅스 서버에서 약 13분이 걸렸다. 이를 32,483으로 확장했을 때 단순히 서열의 수에 비례하여 시간이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어휴, 71시간이 걸린다. CPU를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스크립트라는 것이 문제이다. 이를 병렬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MSA를 위치 기반으로 썰어서 20개 정도로 나누어서 각각을 별도의 job으로 돌리고, 다시 이를 합치면서 coordinate를 재계산하고... 아, 귀찮아.
바로 곁에 있는 '최신' 컴퓨터엔 AMD Ryzen 9 5950x에서 시험 삼아 100개의 서열을 처리해 보았다. 5분 정도가 걸렸으므로 구형 Xeon 서버보다는 2.7배 정도 빠르다. 그래, 여기에서 돌리자. 어제 늦게 퇴근하면서 Ryzen 서버에서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오전 10시 23분 현재 17500 site에 대한 계산이 끝났다. 오늘 퇴근 무렵이면 전체 29 kb에 대한 conservation 수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사용하면 내 입맛에 맞게 기준을 정하여 conserved sequence를 뽑는 것이 가능하다. 100% conserved sequence를 추려내면 길이가 짧은 서열만이 나와서 후속 분석 작업에 쓰기 곤란하다는 것은 이미 ClipKIT 결과를 통해서 알고 있다.
trimAl은 정말 느리다. 그러나 alignment의 포맷 전환이라든가 위치 기반 추출 등 유용한 부속 기능이 있어서 가끔씩 쓰기에는 좋다.
독후감 쓸 거리가 몇 개 있는데 주말에 차분히 앉아서 블로그 작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뇌세포가 퇴화했는지 생각을 글로 풀어나가는 것이 예전보다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