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1일 목요일

Spoligotyping과 CRISPR

세균의 subtyping이란 종(species) 혹은 아종(supspecies)보다 더 낮은 단계까지 구별하는 행위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strain 수준에서 미생물을 동정하는 행위(=strain identification)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역학(疫學·epidemiology: 지역이나 집단 내에서 질환이나 건강에 관한 사항의 원인이나 변동하는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 전염병학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음. 물리학의 한 분야인 力學이 아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감염원의 동정 및 outbreak의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subtyping은 whole-genome sequencing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따라서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발전한 PCR 기반의 서브타이핑 방법이 여전히 널리 쓰인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Mutilocus variable number tandem-repeat (VNTR) analysis
  • Multilocus sequence typing (MLST)
  • (기타 non-PCR 기법) RFLP, PFGE 등
Spoligotyping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 complex, MTBC)의 typing에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결핵균의 염색체에는 36 bp의 direct repeat(DR)이 34-41 bp의 spacer를 사이에 두고 연속적으로 배열한 구조가 존재한다. DR 영역의 끝부분에 바깥쪽을 향하게 결합하는 primer를 사용하여 spacer 영역을 전부 PCR로 증폭한 뒤, 표준 결핵균주에 해당하는 H37Rv(NC_000962.3) 및 Mycobacterium bovis BCG에서 알려진 43종의 spacer에 해당하는 oligomer array에 hybridize하여 어떤 타입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914561/
미국 CDC에서 배포한 자료인 'Spoligotyping and Mycrobacterium tuberculosis(PDF 링크)'에 좀더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Spoligotyping에 쓰이는 염색체 부위는 어쩌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유전자 편집 기술로서 각광을 받는 CRISPR/Cas 시스템의 CRISPR에 해당하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는 편의상 생략하였지만, 결핵균 유전체의 DR 영역에 IS6110이 삽입되어 있어 PCR로 이를 철저히 분석하는 것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임상분리균주에 따라서 IS6110의 삽입 위치는 약간씩 다르다. 또한 CRISPR과 그 주변 영역에 결실이 일어난 균주는 negative spoligotype을 나타내기도 한다('Structure and variation of CRISPR and CRISPR-flanking regions in deleted-direct repeat region Mycobacterium tuberculosis complex strains'. BMC Genomics 2017 18:168 PMC 링크). CRISPR 영역 자체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고, 어차피 모든 원핵생물에 이 시스템이 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유전체 정보가 확보된 고세균의 85%, 박테리아의 48% 정도에만 CRISPR-Cas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의 subtyping 용도로 가장 이상적인 CRISPR은 무엇일까? 만약 bacteriophage나 plasmid가 많은 조건이라면 spacer 서열을 획득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outbreak가 일어나는 시간 프레임 안에 CRISPR이 변하게 되므로 subtyping의 유용성이 줄어든다. 혹은 내부 spacer가 없어지거나, SNP가 발생하거나, 하는 등의 사고를 겪을 수도 있음을 염두어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 쓴 글은 다음의 리뷰 논문을 많이 참고하였다.

CRISPRs: Molecular signatures used for pathogen subtyping. Appl. Environ. Microbiol. 2014 80:430 (PMC 링크)

또한 결핵균의 genotyping marker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로는 SITVITWEB이 유명하다고 한다.

바쁜 5월을 마무리하며

논문 작성과 워크숍 발표 준비로 바쁜 5월을 보냈다. (주)엠디엑스케이에서 개최한 PacBio User Group Meeting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경험한 PacBio RS II 기반 유전체 해독 사례를 총정리하고, 최근에 공개된 software tool을 적용하여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발표할 주제에 대한 배경 설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보통 주어지는 30분의 발표 시간이 늘 부족하다.


외부에서 부탁을 받는 강연은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쁜 일정을 쪼개어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 기한만 채우면 되는(혹은 쪽수만 채우면 되는) 보고서
  • 참석자 수만 채우면 되는 회의(또는 행사)
  • 결론을 내리지 않고 끝나는 회의
  •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하는 회의
  • 순서에 따라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정해진 시간에 끝나는 패널 토론
  • 행사의 무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행사 시작 부분에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행위
  • 행사 자체에는 참여하지 않고 행사장 주변에서 와글거리는 사람들
모두 본질은 외면하고 형식과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연구도 그런 것 같다. 이번 PacBio UGM에서는 문화와 관련하여 평소에 슬라이드로만 비추었던 나의 주장을 인쇄물로 남기기에 이르렀다. 핵심 슬라이드 두 매를 블로그에도 소개하고자 한다. 혹시 인터넷에서 아래의 같은 글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내 슬라이드를 누군가 도용한 것이다. 행사를 주관한 회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난에서 나 역시 벗어날 수는 없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것들이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책임,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일, 지역사회나 국가가 제공해야 할 일 등이 돈을 내고 사는 서비스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이제 연구라고 하는 영역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시대가 되었다. 논문을 보고, 동료와 토론을 하고, 잘 안되는 것은 다시 실험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과정이 이제는 돈을 주고 소비자의 입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상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갑'의 입장이 되어 연구 결과의 생산 과정을 콘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구매자(=연구자)에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외형적으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여 포장된 결과를 가지고 나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과연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당하게 수행되었는지, 또한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으로 수행되었는지를 잘 따지지 않게 된다. 

연구 수행의 일부분, 즉 고도화된 장비를 표준 프로세스로 돌려서 일정 품질의 데이터를 얻어내는 규격화된 작업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은 일견 바람직하기도 하고 그 추세를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작업은 자신의 손을 통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 과제책임자는 또 누군가를 시켜서 일을 하겠지.

오케스트라를 꾸미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은 없고 전부 지휘자가 되고 싶은 꼴이라고나 할까. 월간중앙에 실렸던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해 본다(링크).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의사는 고단한 수술실에 잘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인정받는 자리에서 존경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아래 의사들이 대리수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병원은 의사 한 명이 암 수술을 연간 1000건 넘게 한다고 홍보한다. 그게 자랑할 일인가? 그건 정상이 아니다... 최고 지휘관들이 폼 잡고 각 잡는데 신경 쓰지 말고 목숨 걸고 전장(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우리나라는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앉아서 일 시키는 사람을 더 높이 쳐준다..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단독 인터뷰] ‘국민의사’ 이국종이 의료계에 던지는 쓴소리
일을 시키는 원동력(돈 혹은 권력이고, 결국은 같은 것이다)을 갖고자 달려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야심만만 사람? 욕심 많은 사람? 그것을 향해 너무 내달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이 사회에 정착하기를 바란다.

2018년 5월 24일 목요일

트랜스포머용 권선기(winder)를 만들어 보자!

2018년 초여름의 DIY 프로젝트는 진공관 앰프용 출력 트랜스포머를 만들기 위한 권선기를 만드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완제품(진공관 앰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품(트랜스포머)을 만들기 위한 기구(권선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 문장에 '만들다'라는 낱말이 세 번 쓰였다. 아주 간단한 기성품 와인더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생겼다. 공장에서는 모터로 구동하는 권선기를 쓸 것이 당연하므로 DIYer를 위한 수동 권선기는 그 수요도 매우 적고 국산품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파는 아래 사진의 것은 물건 자체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 부피에 비해 무거워서 배송료가 많이 나간다.



물레를 연상시키는 권선기도 있다. 다음은 반갑게도 국산이지만 일 년에 트랜스 한 조를 감을 정도의 DIYer가 집에 두고 쓰기에는 너무 거대하다.

출처 http://www.winder.co.kr/products/kor/p12DWH-10.asp (대아권선기술)

권선기는 비교적 간단한 기구이다. 동력과 전달장치, 보빈을 물릴 축, 그리고 몇 번이나 감았는지를 세는 계수장치를 튼튼한 바닥판 위에 고정하면 된다. 외국쪽 사이트를 뒤지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동력쪽은 크랭크를 손으로 돌리거나 수동 혹은 전동 드릴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카운터는 출입문 열림 경보장치에 쓰이는 리드 스위치에 만보계나 전자계산기를 '해킹'하여 쓰거나, 자기장을 감지하는 홀 센서에 전자식 카운터를 연결하기도 한다. 직접 만든 로터리 엔코더를 쓰는 사례도 보았다. 기계식 카운터는 구동축 회전에 따라서 표시창이 숫자가 증가하는 것도 있고, 라쳇 카운터라고 해서 레버를 누르는 동작에 따라서 숫자가 올라가는 것이 있다. 후자는 프레스 공장 등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이런 기계식 카운터는 작동 속도가 높지 않아서 초당 3회를 넘으면 정확히 카운트하기가 어렵다. 리드 스위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카운터가 없는 매우 간단한 권선기를 보자. 이것은 사실 트랜스포머 혹은 코일용 권선기가 아니다. 쥬얼리를 만드는 사람이 얇은 금속선을 말아서 세공할 때 쓰는 것 같다. 자작 사례는 여기에 잘 나와 있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uk/pin/331296116321023513/

나는 속도가 조절되는 Skill 전동 드릴을 동력장치로 쓸 예정이다. 대형 모니터의 벽면 고정용 부속이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이를 드릴의 손잡이에 고정하면 드릴 자체를 확고히 고정하는데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닥판을 만들려면 약간의 목공을 해야 할 것이다. 톱질이 정말 두렵다! 아무리 그어 놓은 선을 따라서 자르고 싶어도 원하는대로 되지를 않으니 말이다. 전동 드릴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구멍을 뚫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직소가 있으면 좀 더 편할까? 사용 빈도도 높지 않고 소음과 분진(청소기를 연결하여 톱밥을 빨아내는 모델도 있다지만)이 심한 장비라서 아파트에서 이를 쓰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제부터 AliExpress에 필요한 부품을 주문하기 시작하였다. 보빈을 물어서 돌리는 회전축으로는 전산볼트라는 것을 쓸 것이다. 이는 'computational' 볼트가 아니라 머리 부분이 없이 전체에 나사산이 있는 볼트를 말한다. 천장에 덕트를 고정하기 위해 매다는 바로 그 볼트이다. 표준 길이는 1 미터라서 절단 및 나사산 마감 가공을 의뢰해야 한다.

출처 http://daebong19.co.kr/sub/sub02_01.asp?category=1501000000 (주) 대봉

길이는 150~200 mm 정도로 맞추려고 한다. 한쪽 끝은 드릴척에 고정하면 된다. 반대쪽 끝은 그냥 허공에 띄우거나 로드엔드 베어링을 연결하여 지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내 전동드릴은 스위치를 누르는 깊이로 회전수의 조정이 가능하다. 매우 낮은 속도에서도 감을 수 있도록 미세 조절 장치를 고안하는 것이 마지막 숙제이다. 보빈에 에나멜선을 차분히 감기에 적당한 속도를 전동 드릴로 얻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자전거 페달을 돌리듯 크랭크 기구를 만들어 천천히 감으려고 한다. 1차 코일만 해도 트랜스 두 개를 만드려면 4천번 정도는 감아야 한다! 에나멜선은 승리상사라는 곳에서 구입하면 된다.

동력을 전달하고 측정하기 위하여 어떤 부품을 고르고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이렇게 고심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라면 너무나 쉽게 해결을 하였을 것이다. 납땜만 하던 것에 비하여 적성에 조금 더 맞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품을 조사하다가 3D 프린터를 자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저렴한 직선 이송 기구로서 볼스크류가 아니라 전산볼트를 쓴다는 것도 알았다. 아두이노를 이용한 3D 프린터 자작을 한다면 무엇인가를 깎아서 만들고, 구동 장치를 꾸미고, 배선을 하고, 납땜을 하고, 나아가서는 프로그래밍까지 하는 모든 재미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너무 거창한 일이라면 권선기에 전동드릴이 아니라 속도제어장치가 구비된 DC 모터를 다는 정도의 시도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독서 기록 - 나를 지키는 힘(임병희 지음)

나는 어떤 한계를 뛰어넘아야 할까. 노력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타성의 한계부터 넘어야 한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겸손을 가장한 자학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일단 내게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한계가 아니라 현재의 한계일 뿐이다. 이 한계를 한꺼번에 넘어설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 넘다보면 내 한계는 이전의 한계보다 넓어진다. 한계를 고정하지 말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또 얼마나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알게 하자. (본문 중에서)
 이 책의 부제는 '20인의 철학자가 전하는 삶의 중심 찾기'이다. 흔히 서양 철학 위주로 소개한 책과 달리 여기에서는 동양의 철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을 할애하였다.


저자 임병희는 국문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서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동북아시아의 신화를 연구하였다. 그런 그가 '오목수 공방'을 공동 창업하여 목수로 일하면서 강연과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지난 2월에 인터넷에 남긴 글을 보자.

임병희의 신비한 단어사전 85화. 어른들의 놀이터 '공방' - 링크

그는 수도 없이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7년씩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왜 목수일을 하세요?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으세요?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나는 나다.
나는 버린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그러면 책의 내용을 주목해 보자.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 것인가, 혹은 진실을 대면하고 '나로 살기' 위한 고달픈 여정을 떠날 것인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내민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과 비슷하다. 나를 살리는 공부를 하려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요즘 심리학에서는 지나친 자신감(과신)을 경계하라는 지적을 많이 한다. 이는 이 책의 주장과 상충하지 않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나를 찾아 나가는 여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함인 반면 과신은 현 상태에 안주하게 만들어 오류를 범하는 요인이기 떄문이다,
과거 (존 스튜어트) 밀에게 감정과 느낌이란 증명할 수 없는 부정확하고 불확실한 것, 그러므로 떨쳐내야 할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감정을 거세한 채 살았다. 하지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 그를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구원해 준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바로 그 감정이었다. 밀에게 감정은 자각하지 못했던, 애써 외면했던 진짜 자기 자신이었다. (본문 중에서)
운명이라 생각하면 하기 싫은 일이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비로소 나를 알아가는 공부에 힘을 실을 수 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남과 다른 차별화된 나를 만드는 일에 의지를 갖고 뛰어들라는 이야기이다.

방황과 변화를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그러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한 관계와 나를 둘러싼 세상 모두에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나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계속 과거 속에 살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찰리 채플린)
 미토피아(me+topia)는 지금 여기에 펼쳐진 나의 일과 삶의 세상이다. 이는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서 되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쏟아서 결국 바란 것을 이뤘다는 뜻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단호하고 굵은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었다.
 

2018년 5월 20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위험한 자본주의> 외 네 권

이번 독서는 매우 비능률적이었다. 2주간의 대출 기간은 연장까지 했지만(요즘 자주 이러는 편이다) 두 권은 끝까지 읽지 못했고, 실제로는 대출 직후 삼사일 동안에만 집중적으로 독서를 하였다. 제대로 독후감을 쓰려면 책을 옆에다 놓고 뒤적이면서 해야 하는데, 오늘이 반납 마감일이라서 겨우 사진만 찍어놓고 서둘러 반납을 하고 말았다.

요즘 읽는 책은 경제 제도를 둘러싼 갈등에 대한 것이 많다. 소련의 붕괴 이후 공산주의라는 실험은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 북한의 핵 포기와 경제적 개방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왜 이러한 사상이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올해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서 그의 사상이 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재조명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년은 찰스 다윈 탄생 210주년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세계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거인이다.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은 토마 피케티의 저서이다.


누구나 미국인 수준의 윤택한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지구의 자원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소득 수준이 올라간 인도와 중국 사람들(그 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이 이에 '걸맞는' 소비를 하려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당신들마저 이렇게 살면 전 지구가 위태로워지니 제발 참으시오'라고 할 수 있는가? 성장은 꼭 필요한가? 자본주의는 경제적 성장(혹은 팽창)을 기본 전제로 하는데, 현재 세계는 과거 수준의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성장이 없이도 번영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길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어느 나라든지 싼 가격에 공산품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에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필이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까이 있어서 중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해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는 취약점이 있지만 말이다. 욕망이 가득한 시대, 그리고 경제적으로 과도하게 국가간에 연결이 된 시대에는 다 같이 문제 의식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 위험한 자본주의 - 마토바 아키히로 지음|홍성민 옮김
  • 소비를 그만두다 -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정문주 옮김
  •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 류동민 지음
  • 있는 자리 흩트리기 - 김동연 지음
  • 창조적 자본주의 - 마이클 킨슬리 엮음|김지연 옮김

6N1 + 6P1 싱글 앰프의 보수 작업

방바닥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작업을 하면 좋지 않은 자세로 인하여 쉽게 피로해진다. 오늘은 오랜만에 책상 위에서 작업을 하였더니 능률이 4배는 오른 것 같다. 이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의 가장 큰 문제는 전원 트랜스에서 '웅-'하는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용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별도의 트랜스를 사용하여 히터 전원을 공급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오늘은 확실한 결론을 얻기 위하여 보유한 3개의 전원 트랜스를 이용하여 온갖 조합을 해 보고, 심지어 히터 전원을 직류로 만들어 보기도 하였지만 트랜스의 울림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것은 220V에 전원 트랜스를 두 개 병렬로 연결하면 항상 B 전원용 트랜스에서만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트랜스에서 발생하는 울림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접지 처리를 함으로써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험을 대부분 줄일 수 있었다. 방법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1. PCB의 그라운드 단자에서 220옴 저항을 통한 접지
  2. 직렬로 연결한 220옴 저항 두 개를 초단 히터 전원에 병렬로 연결하고, 중간점을 접지(아래 그림 참조)
그림 출처: http://www.valvewizard.co.uk/heater.html
(1)과 (2)는 전부 한 점에서 섀시에 연결하였다. 트랜스의 접지선과 AC 인렛의 접지선은 섀시의 다른 한 곳에서 연결하였다. 속칭 '하모니카 단자'를 사용함으로써 연결 작업을 한결 수월하게 진행하였다.

1/4 와트 저항이면 충분한 것을 어쩌다 보니 5 와트 시멘트 저항을 사용하였다.
사각 구멍을 뚫어서 전원 스위치도 제대로 달았다.


100%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줄질을 하는 요령이 생겼다.
다음으로는 출력관(2 x 6P1)의 히터 전압을 조정하였다. 내가 별도로 구입한 전원 트랜스는 1.2암페어 급으로 0V-9V-12V-15V-18V의 탭이 있는 것이다. 12V-18V 탭에서 6V를 뽑아내어 진공관 히터에 연결하면 5.7V 정도로 전압이 낮아진다.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5% 오차를 감안해도 이는 약간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9V-18V에서 충분한 전압을 뽑아낸 뒤 시멘트 저항을 적절히 조합하여 직렬로 배치함으로써 히터에는 6.17-6.18V가 걸리게 만들었다. 12V-15V 탭에는 LED 파일럿 램프를 달았다.

마지막으로 PCB에 35 mm 서포트를 달아서 진공관이 전면 창에서도 잘 보이게 만들었다. 


8.2옴 저항 3개를 병렬로 연결하였다.

전면 패널을 고정하는 것은 마지막 숙제로 남겨두자.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칠면서도 시원한 소리가 난다. 여기에 R-core 출력트랜스를 연결한다면 화룡점정이 되지 않을까? 머릿속에는 수동 권선기를 자작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기성 제품을 사는 것이 현명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월말에 시작된 진공관 앰프 자작 프로젝트는 많은 시행착오와 사고, 부상,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고 중간 결론을 내리자.




2018년 5월 16일 수요일

Genome assembly graph의 시각화 도구 "Bandage"

이틀 전에 Ryan R. Wick의 hybrid assembler인 Unicycler를 소개한 바 있다(원문 링크). Wick는 이보다 앞서서 genome assembly graph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개발하여 발표하였었다. Bandage는 운동선수들이 몸에 칭칭 감는 붕대 혹은 반창고를 연상시킨다. 실제 표현되는 결과물이 이를 닮았다. 하지만 Bandage는 논문 초록에 의하면 Bioinformatic Application for Navigating De novo Assembly Graphs Easily의 약자라고 한다.
Bandage: interactive visualization of de novo genome assemblies. Bioinformatics. 2015 Oct 15;31(20):3350-2 PubMed GitHub Documentation
처음에는 리눅스에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Qt 5 등 prerequisite가 많아서 윈도우에 깔아버렸다. 우분투라면 좀 더 편하게 설치가 가능했었을 것 같다. 논문에서 소개한 그림을 보자.

PMC full text: Bioinformatics. 2015 Oct 15; 31(20): 3350–3352.

다음 그림은 Unicycler로 조립한 어떤 장내 미생물의 유전체를 Bandage에서 그려본 것이다. 이 결과물은 --mod bold 옵션을 주어서 조립한 것이라 매우 단순하고 완성도가 높은 구조를 보여준다. 대신 misassembly의 가능성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유전체 조립 결과물이라 하면 FASTA 파일로 표현된 contig 혹은 scaffold 서열을 전부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Velvet, SPAdes, Trinity, MEGAHIT 등 많은 assembler들이 그래프 형식으로 표현된 결과물을 같이 제공한다. Unicycler에서는 GFA format의 결과를 제공한다. Bandage가 지원하는 입력 파일을 알아보자.
Bandage currently supports loading assembly graphs in the LastGraph format (used by Velvet), the FASTG format (used by SPAdes and MEGAHIT), the Trinity.fasta format (used by Trinity), the ASQG format (used by SGA and StriDe), and the GFA format (used by ABySS and other programs). If you are using IDBA, check out this tool for converting an IDBA graph into GFA format. See assembler differences for more information. (출처 링크)
일루미나와 PacBio 시퀀싱 결과를 나름대로 이용하여 완성한 미생물 유전체 정보를 여럿 등록하고 논문으로 이미 발표하였었는데, Unicycler와 Bandage를 뒤늦게 접하게 되니 이들을 재평가하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sequencing raw data를 SRA에 등록하여 공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SRA에 제출한 그대로의 long read raw data, 즉 HDF5 파일(.h5)을 그대로 다운로드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한 것 같다. 오직 fastq-dump로만 파일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h5 파일이 있으면 일부 프로그램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지만 fastq/fasta로만 받으면 사용의 폭이 약간 좁아진다. 물론 내가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며칠 동안 조사하고 궁리한 것은 (주)MDxK로부터 이번 월말에 개최하는 PacBio User Group Meeting에서 발표를 의뢰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따금씩 발표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경험한 것을 정리하고 최신 동향을 조사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