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7일 목요일

누가 자석을 흔드는가 - 바쁜 철가루, 올라가는 한심도(한심 지수)

요즘과 같이 큰 비가 내려서 집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대해서 누구나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아, 상황에 따라서는 한심함을 느낄 수는 있겠다. 조금만 비가 와도 범람하기 쉬운 터에 집을 지었다거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재난에 대비할 시간과 예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였다면 말이다. 

그러면 집이 떠내려가는 사고는 사회적 사건이 되고, 이에 대해서 비난할 대상이 생긴다. 또한 그 집이 내 집이냐 남의 집이냐에 따라서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난다. 현대 사회에서 비난을 쏟을 대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심을 한 곳으로 모으고-봐야 할 곳으로부터 시선을 딴 데로 돌리는 효과도 있다-때로는 새로운 일을 꾸미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쓰기로 하자.

'한심하다[寒心-]'라는 낱말은 다음 국어사전의 뜻풀이에 의하면 정도에 알맞지 않아 마음이 가엽고 딱하거나 기막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로 '차가운 마음'이라는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

'도대체 왜 저럴까?' '저렇게까지 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대상은 '한심도' 또는 '한심 지수'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정작 본인까지도 한심한 일에 휩쓸려 동참하게 되면 심한 무력감과 더불어 피부에 와 닿는 한심도는 지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전자석에 건전지를 연결하면 그 주변에 형성되는 자기력선을 따라 철가루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는 초등학교 수준의 과학 교과서에서 보았다. 자기력선의 근원이 되는 '자극(magnetic pole)'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세상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질서를 잡을까? 도저히 수용을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이 위치할 수도 있고, 이따금 자리 바꿈을 하는 권력이 있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력선을 스스로 감지하고 자극을 향해 줄을 서는 철가루, 그리고 그렇게 끌려가는 것을 자발적이고 능동적 행동으로 여기며 스스로에게 당위성과 추진력을 부여하는 철가루 정신

나 역시 그러한 철가루 중의 하나가 아닐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기력감과 한심함이 적당히 뒤섞인 그런 것이다. 자기력선에 따라서 줄을 서면서 만약 도파민 분비를 느끼게 된다면, 그건 좀 심각하다. 복종에서 쾌감을 얻는다면, 이는 끝을 모르는 포지티브 피드백으로 폭주하여 더욱 강한 복종에 자기를 얽어매기 때문이다.

철가루 정신이 높으면 한심도 역시 올라간다.


자석의 양 극은 '대세'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을 생각해 보자. 마치 요즘 세상의 모든 지식과 기술은 대세가 된 AI로 인하여 통섭에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통섭이 과연 맞을까? 대세를 따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끔은 그 대세의 실체를 의심해 보기도 하고, 누가 누구를 위해 종사하는 도구인지 고민해야 한다. 

자기력선에 따라 매번 고쳐 앉으려 하지 말고, 도대체 누가 자석을 흔들면서 이득을 취하는지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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